생명의 암호라는 말이 설명하는 것과 가리는 것
DNA를 읽는다는 것은 생명을 모두 읽는다는 뜻일까?
Biz2Lab 지식 에세이
이야기의 길 따라 6개의 장면
비밀번호와 유전암호는 다르게 작동한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잠긴 문을 열 수 있다. 그래서 DNA를 생명의 암호라고 부르면, 염기서열을 알아낸 뒤에는 한 생명의 모든 모습을 예측할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유전암호라는 용어는 더 좁은 관계를 가리킨다. 단백질을 만들 때 염기 세 개씩의 단위인 코돈이 아미노산이나 번역 종료 신호에 대응하는 관계다. NHGRI의 유전암호 안내 (새 창)와 종료 코돈 정의 (새 창)는 이 구분을 설명한다.
DNA에는 A, T, G, C로 표시하는 네 종류의 염기가 있다. 글자로 적으면 서열을 비교하고 기록하기 편하다. 그러나 분자에 알파벳이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글자는 서로 다른 화학적 구성 요소를 표기하는 기호다.
정보 이론에서 세는 정보는 또 다른 정의를 쓴다. 글자로 기록할 수 있다는 공통점만으로 생명에서의 기능이나 의미가 같은 계산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세포가 문장을 의식적으로 이해해서 단백질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 표현 뒤에는 분자들이 결합하고 반응하는 과정이 있다.
암호라는 말은 규칙적인 대응 관계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동시에 해독이 곧 전체 이해라는 생각을 불러온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읽는 일, 그것이 세포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조사하는 일, 한 개체에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설명하는 일은 서로 다른 단계다. 네 글자라는 간결함 때문에 그 사이의 작업까지 간결해지는 것은 아니다.
1953년에 제안한 것은 어떤 답이었나
1953년 4월 25일 Nature에 실린 Watson과 Crick의 논문 (새 창)은 DNA의 구조를 제안한 글이다. 논문의 제목과 공개된 도입부는 구조 제안의 범위를 분명히 한다. 이중나선을 안다는 말과 유전암호의 대응 관계를 모두 해명했다는 말, 인간 유전체 전체의 서열을 읽었다는 말은 같은 사건이 아니다. 짧은 연표가 이들을 하나의 발견으로 합치면 뒤에 남았던 질문들이 사라진다.
구조를 알아보는 작업에는 모델을 조립하는 추론과 X선 회절 같은 실험 자료가 함께 필요했다. NHGRI의 DNA 역사 안내 (새 창)는 Watson과 Crick뿐 아니라 Maurice Wilkins와 Rosalind Franklin의 연구를 함께 소개한다. 두 이름만 남기는 이야기로는 관측 자료가 어떤 경로로 생겼는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구조를 제안한 작업과 그 구조를 뒷받침할 실험 자료를 만든 작업은 서로 다른 기여다. 발견의 역사를 읽을 때에는 두 작업의 출처를 함께 남겨야 한다.
짝을 짓는 규칙과 서열을 읽는 규칙
이중나선에서는 두 가닥이 염기쌍으로 연결된다. 보통의 상보적 결합에서는 A가 T와, G가 C와 짝을 이룬다. 한 가닥의 서열을 알면 상보적인 가닥의 서열을 정할 수 있다. NHGRI의 구조 설명 (새 창)은 이 관계가 각 가닥을 새 가닥의 틀로 사용할 수 있는 복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한다.
복제를 생각할 때에는 두 질문을 나누어 보자. 정보의 표기에서 다음에 어떤 염기가 와야 하는가. 실제 세포에서 어떤 분자가 그 반응을 수행하고 잘못된 결합을 어떻게 다루는가. 상보적인 서열을 종이에 적는 일은 첫 질문을 보여 주지만 두 번째 과정 전체를 재현하지 않는다. 구조가 기제를 제약한다고 해서 구조 그림 하나가 복제 장치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종이에 ATGC라는 네 글자를 적고 각 자리 아래에 짝이 되는 기호를 놓으면 TACG를 얻는다. 방향과 실제 분자의 공간 구조는 생략하고 상보적 짝만 표시한 예다. 이 표기를 했다는 이유로 네 글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지까지 알아낸 것은 아니다. 그것을 물으려면 어느 가닥의 어느 구간이 사용되는지, 어떤 RNA가 만들어지는지, 세 글자를 읽는 출발점은 어디인지가 더 필요하다. 네 종류의 기호로 세 자리를 채우는 경우의 수는 4 곱하기 4 곱하기 4, 곧 64다. 조합 수를 세는 이 산술만으로 각 조합에 어떤 산물이 대응하는지는 정해지지 않는다. 짝을 적는 표와 유전암호의 대응표가 서로 다른 질문의 도구라는 점이 여기에서도 보인다.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은 또 다르다. DNA에서 RNA가 전사되고,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RNA의 코돈에 대응해 아미노산이 연결된다. 염기를 짝짓는 관계와 코돈을 아미노산에 대응시키는 관계는 서로 다른 규칙이다. 한쪽을 안다고 다른 쪽까지 저절로 얻어지지는 않는다. 앞의 사실들을 같은 “암호를 읽는다”는 표현으로 묶으면 분자 사이의 단계가 보이지 않게 된다.
모든 유전자가 단백질의 서열만 지정하는 것도 아니다. 기능을 하는 RNA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NHGRI의 유전자 발현 안내 (새 창)는 단백질을 만드는 RNA와 다른 기능을 맡는 RNA를 함께 설명한다. DNA 서열의 모든 구간을 최종 단백질의 문장으로 읽으려는 비유는 여기에서 범위를 잃는다.
DNA의 상보적 염기쌍과 RNA 서열을 세 염기씩 읽는 유전암호를 나눠 표시했습니다. 그림은 설명용이며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의 실제 서열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Biz2Lab 편집 개념도 · 원자료의 이미지나 실측 데이터 복제 아님
관련 근거: NHGRI, DNA 안내 (새 창)
같은 글자도 세포에서 다르게 쓰인다
서열을 책에 비유한다면, 다음에는 어느 세포가 어느 부분을 언제 얼마나 사용하는지 살펴야 한다. 세포 종류와 조건에 따라 RNA와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양이 조절된다. NHGRI의 발현 설명 (새 창)은 발현 산물 가운데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것들도 있음을 밝힌다. 하나의 지시가 결과 하나로 끝나는 일렬의 흐름만으로는 이런 관계를 표현하기 어렵다.
비유를 더 이어 가자면, 같은 악보를 가지고도 실제 연주에는 악기와 연주 조건이 필요하다. 악보만 보아 음의 높이를 읽을 수 있어도 그날 들릴 소리 전체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서열·발현·세포 조건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비유이며 세포에 지휘자나 의지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설명이 유용한 곳과 세포의 다른 관계를 더 봐야 하는 곳을 나누려는 비유다.
DNA와 관련 단백질에 붙는 화학적 표지가 서열을 바꾸지 않으면서 DNA의 사용 방식에 관여할 수도 있다. NHGRI의 후성유전체 안내 (새 창)는 이런 표지와 발현 조절을 설명한다. 따라서 서열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조건에서나 같은 산물이 같은 양으로 만들어진다고 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후성유전이라는 단어로 마음먹은 대로 유전자를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환경과 발현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특정 행동의 효과가 누구에게나 확인되었다는 것은 다르다. 세포 분열 동안 이어지는 표지와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달되는 표지도 구분해야 한다. NHGRI 자료는 세대를 넘어 전달될 때 많은 표지가 재설정되고 일부는 조건에 따라 이어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이 글은 생활 습관이나 치료 효과를 권하는 건강 안내가 아니다.
읽을 수 있게 된 뒤에 더 세밀해진 질문
분자를 글자로 적는 기술은 서로 다른 생명의 서열을 비교하고, 변화가 있는 위치를 찾아 다른 실험과 연결할 수 있게 한다. 그 성취를 존중하는 일과 한 사람의 가능성을 서열로 닫는 일은 별개다. 서열을 가진 생명은 발달 과정과 환경, 다른 생명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유전 정보가 중요하다는 문장에 모든 삶의 결과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문장을 덧붙일 근거는 없다.
멘델의 교배 비율은 세대에서 어떤 양식이 관찰되는지 다루고, 분자 연구는 그 양식을 설명할 기제를 더 조사한다. 둘 사이를 잇는 데에도 실험과 조건이 필요하다.
방향을 생략한 ATGC·TACG 짝표는 네 자리의 맞은편 기호를 채운다. 그 표에는 RNA로 전사될 구간이나 코돈을 읽는 시작점이 적혀 있지 않다. 종이 위에서 짝을 다 맞춘 뒤에도 세포 안의 전사와 번역은 남는다. 처음의 비밀번호 비유라면 이미 문이 열렸을 자리에서, 이 짝표는 상보적 관계 하나를 보여 준 채 끝난다.
직접 들여다볼 원자료
아래 자료의 근거를 연결해 구성한 에세이입니다. 자료에서 확인한 사실과, 이를 오늘의 질문에 연결하는 원고의 해석을 구분해 읽어 주세요.
- NHGRI, DNA 안내 (새 창)
이중나선·상보적 염기쌍·전사와 번역, 구조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들의 역할.
- Watson·Crick, DNA 구조 제안, Nature 1953 (새 창)
공개된 서지·도입부·편집 해설에서 1953년 구조 제안의 범위를 확인.
- NHGRI, 종료 코돈 (새 창)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코돈과 단백질 합성의 종료를 알리는 코돈의 구분.
- NHGRI, 유전자 발현 (새 창)
RNA·단백질 산물이 생기는 과정과 세포·조건별 조절.
- NHGRI, 후성유전체 안내 (새 창)
서열을 바꾸지 않는 화학적 표지와 발현 조절, 유전되는 범위의 조건.